[취재수첩] SKC와 일진의 기대되는 '동박 경쟁'

입력 2021-01-27 17:58   수정 2021-01-28 00:14

“앞으로 선의의 ‘동박경쟁’을 펼치겠습니다. SK넥실리스의 말레이시아 투자를 환영합니다.”

SKC 자회사인 SK넥실리스의 말레이시아 동박공장 투자 소식이 알려진 직후 경쟁사인 일진그룹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같이 말했다. 얇은 구리막인 동박은 전기자동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다. SK넥실리스는 지난 26일 이사회를 열어 6500억원을 투자해 말레이시아 사바주(州) 코타키나발루시(市)에 첫 해외 동박 생산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최근 6개월 동안 이어진 두 회사 간 신경전도 일단락됐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진그룹의 동박 생산업체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해 1월부터 보르네오섬 사라왁주에서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SK넥실리스는 당초 공장 후보지 중 하나로 일진 공장 인근 부지를 검토했다. 그러자 일진그룹은 거세게 반발했다. SK넥실리스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일진의 현지 근로자들을 대거 빼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인력 유출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SK 측은 강조했지만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앞서 1996년 전북 정읍에 공장을 세웠던 SK넥실리스(당시 LG금속)가 인근 익산에 있던 일진공장 인력 15명을 영입한 사례까지 회자되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당초 지난해 말까지 해외공장 부지를 확정하겠다고 밝혔던 SK넥실리스는 정해진 기한을 한 달 넘기면서까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일진 공장이 있는 사라왁주와 1000㎞가량 떨어진 코타키나발루에 공장을 세우기로 확정했다. SK넥실리스 측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부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진그룹도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업계는 양측의 갈등이 일단락된 것에 크게 안도하고 있다. 일진그룹은 SK넥실리스가 당초 예정대로 사라왁주에 공장을 지으면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국내 기업 간 소송전이 불거지면 해외 업체만 이득을 볼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수년째 ‘배터리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웠다.

두 회사는 말레이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공장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동박 생산능력을 현재 수준의 2~3배인 연간 10만t 규모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SK넥실리스와 일진머티리얼즈는 모두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필수 소재인 동박 분야에서 글로벌 선두주자로 꼽힌다. SK넥실리스의 이번 결정이야말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모범사례가 아닐까. 양측의 상생과 선의의 경쟁이 한국의 동박산업 역량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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